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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불만인 사람들이 엄청 많음에도 왜 법대로만 해야 하나? [법적 안정성이란?]

proqk 2022. 10. 4.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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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배종대, 홍영기 저, <형사정책>의 내용을 제가 이해한 대로 정리하고, 정리하면서 들었던 질문에 대해 스스로 대답한 내용을 기록한 글입니다.

 

아니 저xx 지은 죄가 얼만데 왜 징역 몇 년밖에 안 됨? 대한민국 법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법조계 죄다 썩었다!

 

평소에 이런 생각해 본 적 많지 않나? 수많은 사람들이 강력 처벌을 원하는 범죄자가 고작 징역 몇 년을 받았다는 소식에 분노해 본 적도 있을 것이고, 분노하는 사람들도 자주 볼 수 있다. 반면 아주 사소해 보이는 실수는 과하게 처벌받은 것 같아 보인다. 이 질문을 좀 더 그럴싸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1. 왜 형법(원칙)이 정책적인 판단보다 앞서는가?
2. 범죄를 즉각 처벌하라는 사회구성원들의 요청이 엄청나게 확고할 때에도, 왜 법률가들은 법적인 방식으로만 처리하려고 하는가?

 

이 글에서는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겠다. 정답을 미리 말하자면, 법적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법이념에 대해 말해야 한다.


법이념이 무엇인가? 법이념(Rechtsidee)은 법과 그 운영이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의미한다. 법이념은 법개념과 다르다. 법이념은 법이 존재하는 이유 그 자체다. 예를 들어 '사람의 개념'이라고 하면 목적에 대한 질문(사람은 왜 존재하는가?)을 할 수 있다. 반면 '사람의 이념'은 뭔가 어색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냥 존재하기 때문에, 질문이 성립되지 않는다. 법이념은 '법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가?'에 대한 답이고, 법개념은 그보다 앞서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다. 법개념이 되려면 다음과 같은 요소가 충족되어야 한다.

 

(1) 실정성: 법이 법률 또는 그에 상응하는 규칙으로 있어야 한다.

(2) 유효성: 법에는 효력이 있어야 한다. 즉 관철이 가능해야 한다.

(3) 정당성: 법이 정당한 내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어야 법규범 또는 그 운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든 것은 대부분 이념과 개념이 일치한다.하지만 법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이념과 개념이 일치하지 않는 예외다. 법은 왜 만들었나? 그것에 대한 대답은 바로, '정의를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법이념은 법과 그 운영의 궁극적인 목적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러한 법의 최종목적을 한 마디로 '정의'라고 부른다. 법철학자 라드브루흐(G. Radbruch)는 이때의 정의를 넓은 의미의 정의라고 말했고, 이것은 좁은 의미의 정의, 법적 안정성, 합목적성의 세 가지 법이념에 의해 실현된다고 하였다.

 

1) 정의

법이념으로서의 정의는 '평등'을 말한다. 형법이 추구하는 정의도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 할 범죄자에게 범죄에 상응한 형벌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단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 할 범죄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고,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을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고 하며, 형법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2) 법적 안정성

법이념으로서의 법적 안정성 또는 법적 평안은 곧 '법(률)의 지배'를 말한다. 당위는 개인의 감정이나 가치관, 관념 등이 아닌 규정된 법규율에 따라 객관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규칙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규칙을 만드는 이유는 뭔가? 이유는 단순히, 동아리원들을 규칙대로 하게 하려고 만드는 것이다. 여기의 '규칙대로 하려고' 부분이 바로 법적 안정성과 같다. 법적 안정성이 지켜졌다는 말은 곧 법이 잘 지켜졌다는 의미다.

 

이 때 법적 안정성은 '사회가 안정되고 평화롭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를 들어 1991년에 일어난 개구리소년 사건의 피의자가 지금 체포된다고 하더라도 '공소시효'의 실정법이 있기 때문에 형사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 무고한 아이들을 다섯 명이나 살해한 살인자가 아무 처벌없이 사회에 섞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결코 안정된 사회라고 할 수 없지만, 공소시효 법률에 따라서 처벌이 안 됨이 확정되었으므로 법적 안정성이 유지되었다.

 

또한 같은 이유로, 비록 모든 사람들이 싫어해도 또는 동의해도, 형법에 따라 딱 죄지은 만큼만 처벌해야 한다. 범죄에 대한 처벌의 필요성, 시민들의 감정, 위험성에 대한 경고 등에 형벌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맨 위에서 제시한 질문 1번과 2번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 법적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서 아무리 반발이 심하더라도 법대로 해야만 한다.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이게 한 번 어긋나면 너도나도 예외를 두려고 하기 때문에 법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게 되고, 사회는 다툼과 혼란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3) 합목적성

합목적성은 '법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에 합당함'을 말한다. 여기서 목적을 넓은 의미의 정의라고 본다면, 이 정의를 향하고 있어야 하는 건 바로 법의 내용이다. 다시 말해 법의 내용이 목적에 부합되어 있는가? 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합목적성은 결과(효과)지향적인 성격을 갖는다. 효과가 있어야 의미가 있다. 효과가 없는 형사정책(예를 들자면 관철가능성이 없는 상징입법)은 합목적성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질문에 대한 답은 나왔고, 이 세 가지 법이념을 다 지킬 수는 없는 걸까?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사실 위의 세 가지 법이념은 서로 모순되어 있어서, 세 가지 최종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 개별적인 결과가 중요한 합목적성은 보편적인 정의랑 대립된다. 정의를 지키려고 하면 법적 안정성이 깨진다. 예들 들어 개구리 사건의 피의자를 당장 체포해서 형사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정의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법적 안정성이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세 가지 법이념에 대한 우위관계가 있어야 한다. 라드브루흐는 이 우위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1) 법적 안정성

(2) 좁은 의미의 정의

(3) 합목적성

 

세 가지 법이념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퍼센트처럼 서로 지분을 나누어 갖는다. 이 우위관계는 이 때의 우선순위를 말해준다. 즉, 개별적인 사안에 따라 다소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더라도, 언제나 실정법을 적용하여 법적 안정성이 유지된 상태를 지켜야 한다. 물론 그렇게 '다소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사건의 피해자는 매우 억울할 것이며, 이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을 수도 있고, 법조인들이 욕을 엄청 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가까운 정의를 훼손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한 마디로 예외를 만들면 안 된다.

 

여기서 다시 질문이 생긴다. 그러면 법을 더 꼼꼼하고 강력하게 만들어서 법적 안정성과 정의가 같은 상태가 되게 하면 안 되나? 그러나 아무리 꼼꼼하게 만든다고 해도 사람마다 정의가 다른 이상 모순, 불만은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림에서 검정색 선이 법적 안정성, 파란색 선이 정의다. 정의는 유동적이고, 법적 안정성은 고정되어 있으므로 정의와 법적 안정성 사이의 차이(모순)는 필연적이다.

 

 

만약 위의 그림처럼 꼼꼼하게 만든다고 해도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어느 시점에서는 정의보다 법적 안정성이 높다. 그러면 누군가는 처벌이 왜이렇게 약하냐는 불만을 가진다. 반면 어느 시점에서는 법적 안정성이 정의보다 높다. 그러면 법적 처벌이 범죄의 정도보다 훨씬 크게 되고, 누군가는 죄에 비해 처벌이 엄청 강하게 나와서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이러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법이 어쩔 수 없다면 사람의 지혜를 참고해서 융통성있게 판단하면 안 되나? 이 질문은 왜 꼭 법에 끼워맞춰야 하냐는 질문도 된다.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가 지혜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완벽한 지혜자라면 법률 없이도 최상의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판단보다는 법률에 의한 해결을 믿고자 법이라는 틀을 만든 것이고, 그 틀을 지키는 것이 사회를 유지하는 우리 모두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또 질문 하나, 그러면 잘못된 법을 바꾸면 안 되나? 물론 법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므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법이 옳은지 아닌지, 어떤 법이 더 필요한지, 어떤 법은 시대착오적인지 이런 것을 결정하는 건 형법의 영역이 아니다. 당장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판사가 '근데 이 법은 좀 아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제대로 된 형사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분야를 담당하는 것이 바로 형사정책이다. 일단 범죄학과 형법학, 형사정책을 헷갈리면 안 된다. 형법학은 말 그대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규범적으로 평가하고 처벌하는 도구다. 범죄학은 과학적으로 범죄원인을 찾아 이를 제어하기 위한 연구분야다. 최근 예능에서도 많이 다뤄진 범죄심리학, 범죄사회학 등이 범죄학에 속한다. 법대로 처벌하려는 형법학과 원인을 제거하려는 범죄학 사이를 이어주는 것이 바로 형사정책이다. 형사정책은 범죄학의 경험적 연구를 토대로 독자적인 규범기준에 따라 범죄화/비범죄화 또는 형벌의 입법, 개정 또는 폐지를 결정하는 과제를 담당한다. 범죄학의 성과를 형법에 반영하도록 하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법의 옳고그름을 따지고 분석하는 건 형법학의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 법 자체를 건들면 안 되냐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법적 안정성은 뭔가 이상하기만 하다. 사실, 법적 안정성은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런데 그러면,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나?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불만족해도, 엄청 욕을 먹어도 법적 안정성은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 이렇게 규칙에 따라 일관되고 객관적인 처리를 함으로써 신뢰가능하고도 보편타당하게 형성되는 '먼 정의'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법적 안정성에도 예외 상황이 있다. 이것은 다음 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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